이곳에 와서 여러 가지 글을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집지으려는 사람이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진솔하게 답을 써주시는 분들을 보며 느낌이 좋았습니다.
까페에서는 오랫동안 눈으로만 보고 글은 올린 적이 거의 없는데,
오늘 용기를 내어 글을 올려봅니다.
저는 경기도 남양주 광릉숲 언저리 산 중턱에 거칠게 지은 집을 짓고 삽니다.
저희집을 설계한 분은 건축가 이일훈 선생인데,
그 분 말씀이
"예산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당당히 거칠게 가야 멋있다."
"싼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싸게 지으면서 비싼 척 하려 할 때 추해진다."
"우리는 인테리어를 할 돈이 없으니 공간으로 멋을 내자."
그래서 저희집은 샹들리에 거실등 하나 없고 아트월 같은 것도 없고
정원 조경은 소나무 하나 없고 모두 고추밭 고구마밭 강냉이밭 산나물밭이랍니다.
어떤 택배기사 분은 제가 전화로 집위치를 설명하는데, "아 그 짓다 만 집이요." 하고 알았다고 하더군요.
우리집이 거칠기는 거칠게 생겼나 봅니다. 그 대신, 뒷집은 대궐 같이 으리으리하니
눈요기는 그 집을 보면서 하고, 정원은 집 주위를 둘러싼 산을 보고 걸으면 되니 문제 없고,
살기에는 우리집이 공간이 사람을 배려해서 참 좋습니다.
후배가 있는데, 시골로 가서 집을 짓고 살겠다고 한밤에 전화를 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눈 게 아래 글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경험과 만나게 된 사람과 읽은 책과 자신의 판단에 따라
생각이 같거나 어느 부분에서 다르게 되지요.
아래 적은 글은 제가 집을 지으면서 알아보고 공부하고 겪은 경험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마당에 잔디를 깔지 말자는 이야기와 같은 내용은 지금 분위기에서는 조금 일반적이지 않지요.
사람 생각이 다 같으면 세상이 재미없겠지요.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편하게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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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때로 내가 못 하는 부분을 씩씩하게 치고 나가고
성의 있게 살려는 태도가 나에게 인상 깊던 후배가
시골로 이사해 집을 짓고 살겠다 한다.
남자와 여자, 그 둘은 모두 공립학교 부부교사이니
시골로 신청만 내면 쉽게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아, 공립 교사는 돌아다니며 사는 유목민이 될 수 있구나.
밤에 전화로 한 시간 조금 안 되게 건축과 집짓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다시 전화로 이야기했는데
그 후배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시대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보통 하게 되는 생각이 이런 것이구나 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삶의 방식하고 집의 '공간 구성'에 대해 생각하라고 말했는데
며칠 뒤 후배가 하는 이야기에는 어떤 '재료'로 집을 만들지가 주가 되어 있었다.
내가 한 말을 잊지 않았겠지만, 다른 여러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 정보를 살피며
'재료'에 대한 논의에 마음을 빼았겼겠지.
얘기를 하려다가, 내 말이 그에게 이야기해준 다른 사람들 말에 대한 반박이 될까 싶어
순간 말을 멈췄다. 나름대로 신나게 정보를 모아서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재미에 빠졌는데
그거 초점이 아닌데 하고 내가 재를 뿌리는 느낌이 들어서,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그 대신에 국립도서관에 가서 건축잡지를 십 년치 쌓아놓고 쭉 읽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전화통화를 마치고 생각에 잠겼다.
나도 처음에 집을 지으려 할 때 그 후배와 똑같았다.
집을 지을 때 공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도무지 실감할 수가 없었지.
눈에 뜨이는 것은 '황토'냐 '나무'냐 '시멘트'냐 '철골'이냐 하는 재료뿐이었다.
지붕에 기와를 얹고 흙과 나무를 쓰고 툇마루를 놓는 것을 전통계승이라 여겼는데
그러다가 이일훈 선생의 <모형 속을 걷다>를 우연히 동네책방 책꽂이에서 발견해 읽고는
많이 충격을 받았다.
건축에서 전통계승의 핵심은 외양을 흉내내는 데 있지 않고,
삶의 방식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공간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있다는 글을 읽고
머리가 꽈꽈꽝 했다.
집을 짓고자 마음 품은 분들을 종종 만나는데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1. 먼저 공간을 고민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사람이 마주치고 보이고 안 보이는가를 결정 짓는 '공간'을 먼저
고민하고, 그 다음에 재료를 고민하시라.
2. 겉보기에만 좋은 자재 가려내기
흔히 전원주택이라고 불리는 집들에 쓰이는 재료들이 사진에서 멋지고 처음 지었을 때 보기 좋지만 몇 년 지나서 어떻게 되는지 살피시기 바란다. 외장재로 쓰는 어떤 자재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급속도로 낡고 만다.
3.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살게 될지 상상하기
그림 같은 집의 외양에 눈멀지 마시라. 집안에 들어가서 공간을 살피고, 가족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역할을 바꾸어가며 상상하면서 그 사람들이 각자 그 집에서 어떻게 살게 될지를 생각하시라. 혹시 자기가 구상하는 집이 집안에서 서열이 높은 사람만 편하게 여기는 게 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예를 들면, 거실이 한가운데 있고 그 거실 양옆에 방이 있는 구조는 파놉티콘형 감옥의 구조와 비슷한 효과를 식구들에게 낸다. 사람은 자기 영역을 갖고 싶어하기에, 자기 생활을 챙기려고 자식들은 방문을 꼭꼭 잠그기 십상이다. 사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사생활을 챙길 수 있게 공간구성을 해야 집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4. 방에 맞창 내기, 큰 통창은 안 좋아
방에 맞창을 내어서 자연환기가 되게 하면 좋다. 시골에서 집짓고 살면서 찬바람기계를 많이 쓰면 아쉽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집은 비싼 친환경 자재를 써봐야 공기가 쾌적하지 않다. 방의 양쪽으로 창을 내면 바람이 잘 통해서 연간 찬바람기계 사용일을 보름 안쪽으로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맞창을 방에 내려면, 방이 겹쳐 있지 않게 홑집으로 설계해야 한다. 집 한가운데에 하늘로 공간이 열린 마당을 둔 한옥집들의 공간 구성 방식을 응용하면 구성이 가능하다.
큰 통창은 그 집에 손님으로 가서 한번 보고 오기에 좋다. 그러나 살면서 일상에서 자꾸 체험하기에는 좋지가 않다. 큰 창으로 그냥 보이는 화면은 오래지 않아 느낌을 잃고 식상해진다. 풍경이 느낌이 있으려면, 적당한 크기로 틀이 지워져서 살짝 가렸다 보였다 해야 한다. 그리고 통창은 바람이 안 통하기에 답답하다. 게다가 빛이 지나치게 들어와 살기에 버거울 때가 종종 있게 된다. 집안에서 옷 벗고 편하게 돌아다니기가 힘들어 화가 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통창은 사람에게 편안하지가 않다. 집은 보기도 좋아야 하지만 살기에 편해야 한다.
5. 툇마루 만들기, 테크 안 하기
1층 집 바깥에 바닥을 나무로 깔아서 테크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해보자. 집안에서 신을 벗고 집 바깥을 나갈 때 신을 신는 생활양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흙바닥이나 나무바닥이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러니 1층 땅바닥에 테크 나무를 깔지 말고, 높이를 50cm 정도 올려서 툇마루를 만드는 게 낫다.
시골에 집을 지으며 진짜 쓸모가 요긴한 것은 툇마루다. 한반도는 기후가 좋아서 옛날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봄,여름,가을 툇마루에서 밥 먹고, 일하다 쉬고, 손님을 맞이하고, 잠시 물건을 보관하고, 비오는 날 앉아서 비를 바라보는 운치를 즐기곤 했다. 이렇게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이라고 나는 여긴다. 몸에 좋다는 건축자재를 써서 집을 짓고, 그 집 속에 갇혀 있다면 건강한 삶이 아니다.
6. 마당에 잔디 안 깔기
마당에 잔디 안 깔아도 된다. 조선시대 왕궁을 가보면 잔디를 안 깔았다. 왕궁에서 돈이 없어 잔디를 안 깔았겠는가. 위생 때문이었다. 벌레가 많아지고 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텅 빈 흙바닥 마당으로 그냥 두면, 그 빈자리가 여러 용도로 쓰인다. 그리고 잔디가 없어야, 일거리가 준다.
7. 시공회사보다 먼저 건축가를 찾아야
전원주택 책을 보면 집을 물리적으로 짓는 시공회사 광고가 여러 가지 나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공회사를 정하고 나서 그 회사 보고 설계를 덤으로 그냥 해달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시공사는 흔히 있는 도면에다가 집주인 요구를 간단히 반영해서 사나흘 만에 뚝딱 설계도면을 만들어낸다. 이러면 안 된다. 집주인이 사는 방식에 맞는 공간구성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나중에 건축가와 상의해서 제대로 공사할 만한 곳으로 맨 나중에 정한다.
시공사보다 먼저 건축가를 정하는 게 옳다. 인터넷서점에서 '예술' 분야를 선택한 다음에 뜨는 하위분류들 중에서 '건축'을 선택한다. 책 설명을 보면서 삼십 권 정도 건축책을 주문해서 보기를 바란다. 그렇게 여러 건축책을 찾아보고, 건축잡지를 뒤적여서 마음에 드는 건축물 또는 건축에 대한 글 또는 건축가를 정한 다음, 그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을 찾아가 보자. 이때 눈으로 보기에 좋은 집과 몸으로 살기에 좋은 집을 구분하는 의식을 예민하게 해야, 나중에 울화가 안 생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건축가를 정하고 그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한다. 단독주택인 경우, 설계비로 이천만 원 정도 든다고 보면 된다. 디자인 비용을 제대로 지출해야, 나중에 집을 부수고 싶은 후회를 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이천만 원은 때로 집짓는 전체 예산의 10-20%가 되는 돈이지만, 집을 짓다 보면 한순간 실수로 일이천만 원은 쉽게 날라간다. 제대로 된 설계는 시공과정에서 생기는 실수를 예방하기에, 설계비를 아깝게 여기지 않는 편이 지혜롭다.
의뢰인이 살고 싶어하는 모습을 공간으로 구현해주는 사람이 바로 건축가다. 건축가는 자기 마음대로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의뢰인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사람이다. 건축가에게 설계기간을 석 달 이상으로 여유를 주고, 그 사이에 만나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건축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건축가가 내가 지으려는 작은 집을 지어줄까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의뢰인이 건축가의 건축관을 존중하고 고집 피우지 않고 열린 태도로 함께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다면, 그가 이름난 건축가라 하더라도 주택 설계를 자신의 자아실현이라 여기고 진심으로 함께하고 싶어할 것이다.
- 구름배 생각
::: 제가 잘 읽은 건축책을 소개합니다.
- 집 설계에 도움을 얻는 책 -
<모형 속을 걷다>, 이일훈, 솔, 2005
<이 집은 누구인가>, 김진애, 샘터사, 2006
<감응의 건축>, 정기용, 현실문화연구, 2008
- 건축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된 책 -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 서윤영, 역사비평사, 2007
<교양으로 읽는 건축>, 임석재, 인물과사상사, 2008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 김억중, 동녘, 2008
더 읽고 싶으시면,
<건축이란 무엇인가>, 김영섭,김영준,김인철,김종규,김준성,민현식,승효상,이일훈,이종호,정기용,조성룡, 열화당, 2005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에이다 루이즈 헉스터블, 을유문화사, 2008
<르 코르뷔지에 VS 안도 타다오>, 최경원, 숨비소리, 2007
출처 : 전원주택과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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